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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원생이에요.] 봄, 시험, 감독 말고. -대학원생 시험 감독의 하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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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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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원생이에요. 

, 시험, 감독 말고. 

-대학원생 시험 감독의 하루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했던가. 사무실에 앉아 바삐 시험장으로 향하는 백팩의 행렬을 본다. 그들이 볼 시험지가 가득 담긴 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서. 대학원생에게 봄과 벚꽃은 중간고사의 계절만은 아니다. 오늘, 나는 시험감독이다.

 


8:30 am

  사무실에 출근해 출석 체크를 한다. 아직은 정신도 맑고 몸도 가뿐하다. 주말 아침의 조용한 학교를 산책하며 기분 좋게 출근한다. 커피만 있으면 완벽한데. 학교 앞 그 많던 카페 중에서도 주말, 그것도 이런 아침에 문을 여는 곳은 없는 모양이다. 아쉬운 대로 사무실에 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타서 자리에 앉는다. 감독 지침서와 일정표를 확인한다. 61명의 학생을 2명이 감독하게 되어 있었다. 나와 짝이 될 분은 누구지? 준비물을 챙기면서 슬쩍슬쩍, 아닌 척 주위를 살펴본다.

 

 tip! 챙겨가면 좋은 물건

 - 포스트잇: 학번 분류를 할 때나 남은 시험지, 답안지를 구분해 둘 때 좋다.

- 검은색 펜: 꼭 있다. 필기구를 두고 오는 학생, 잉크가 없는 펜을 들고 오는 학생이. 시험 시작 후에 다른 학생에게 펜을 

빌리려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빌릴 때도 그렇지만 퇴실 시에 돌려주랴, 받으랴 소란스럽다. 커닝의 위험도 있다. 

미리 굴러다니는 펜 몇 개를 챙겨두자.

- 형광펜: 결시생 체크나 일정표에 표시할 때 유용하다.

- 포스트잇: 시험 중 특이사항이나 교수님께 전달할 사항이 생겼을 때 유용하다.



8:45 am 

  교실에 도착했다. 지금부터 시험 시작까지가 가장 바쁘다. 학부생들의 긴장한 모습에 몸이 굳는다. 밤샘을 하고 온 건지, 아니면 9시까지 오는 게 힘들었던 건지, 몹시 지쳐 보인다. 다들 예민해져 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학교 커뮤니티나 교학팀에 항의가 들어오기 십상이다. 같이 감독하는 분도(다행히 인상이 좋아 보인다.) 꽤 긴장한 눈치다. 해야 할 일의 순서를 꼼꼼히 체크하고, 칠판에 시험 정보와 유의사항을 적는다.

 

 

  tip! 시험 전 체크사항

 - 자리 띄어 앉히기, 강의실 확인하게 하기 : 종종 다른 시험장으로 잘못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 신분증: 대형 강의는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거의 신분증 검사를 실시한다. 대리시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신분증 미지참자는 시험 전 따로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

- 교수님 지시사항: 필기구나 답안 작성 방식(한글/영문 등)에 대한 코멘트를 전달한다. 

- 퇴실시간: 시험 중 감독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언제 나가도 돼요?”다. 미리 공지해두면 서로 편하고 좋다.



다른 감독이 나와 눈을 한 번 맞추고 입을 연다.

시험 10분 전입니다! 전자 기기의 전원을 모두 꺼 주세요.”

조용한 분주함이 교실을 채운다. 모두가 우리를 본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신분증은 책상 위에 꺼내 두세요. 필기구는 검정 볼펜만 허용됩니다.”

공지사항을 전달하면 절묘하게 59분이 된다. 다른 감독이 미리 나눠놓은 시험지를 배부한다. 또 한 번의 눈빛 교환 후, 나머지 한 사람이 맨 뒤로 가서 유출되는 시험지가 없도록 남는 것을 수거한다.

 


9:00 am

  이제부터는 지루한 긴장과의 싸움이다. 50분간 숨죽여 교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부정행위는 물론, 공지한 사항과 다른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핀다. 특히 1학년 학생이 많은 시험장에서는 귀여운(?) 실수를 자주 보게 된다. 인적사항에 대학’(단과대 명을 기입하는 칸이다.)에 당당히 학교 이름을 써 놓는다거나, 서술형 시험에 익숙하지 않아

이거 답 어떻게 써요? 뒷장에 이어 써도 돼요?”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본다거나. 그런 학생을 보고 있노라면 귀엽기도 하고, 수능은 어떻게 치르고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황당하기도 하다. 나는 대학교 첫 시험을 어떻게 치렀더라? 잠시 멍하니 창밖을 보다, 손을 든 학생을 발견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꿈치부터 조심스레 디뎌가며 교실을 가로질러 간다.

 


9:10~30 am

  ‘지각생 파티’. 시험 시작 후부터 퇴실 직전까지의 시간을 이렇게 부른다. 아침, 점심할 것 없이 시험에 늦는 사람은 항상 있다.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매번 놀란다. 뛰어 들어오는 이들을 진정시킨다. 워워. 전자기기 전원을 껐는지, 신분증은 있는지, 커닝을 할 만한 소지는 없는지 침착하고 빠르게 체크한다. 지각생의 심장 박동 수에 맞게 착착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시험장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지각생은 조급함에,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은 소란스러움에 불만을 갖고 또 우리를 쏘아보곤 하는 것이다. 성심성의껏 그들을 응대(?) 하는, 다소 피곤한 시간이다.

 


9:30 am

시험이 쉽게 출제된 시험장에는, 20분 정도부터 엉덩이를 들썩이는 ‘5G이 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퇴실하여 자유로워지고픈 영혼들이다. 하지만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퇴실이 진행되고 나면 시험지 유출이나 부정행위 적발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지막에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 28분쯤 결시자 확인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응시생 수를 최종 확인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너희를 놓아주마.’ 하는 심정으로 퇴실 공지를 한다. 이때 꼭 1열부터 차례대로 퇴실하라는 말을 먼저 해주어야 한다. 퇴실 시 우르르 몰려나가면서 시험지가 유출되거나 외려 모두의 퇴실이 늦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학생들이 학번대로 차근차근 답지를 나눠 제출하기에도 그편이 좋다.

 

 tip! 시험장의 아찔한 순간들 

- 답안지가 모자라?! 

  학생 수와 답안지 수가 맞지 않아 사무실이 뒤집어졌다. 그 학생은 시험에 응시했음에도 F 처리될 상황에 놓였고, 시험 문제 유출자로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학생의 원망과 사건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시험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 감독이 어떤 징계를 받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으나,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 메멘토 실사판 

  없는 듯 항상 존재하는 부정행위. 이번에는 손바닥과 볼펜에 가득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온 학생이 적발되었다. 해당 감독이 증거 사진을 찍어 사무실에 보고했는데, 후에 말하기로는 영화 <메멘토>의 실사판 같더란다.


- 아픈 학생과 교수 사이, 감독의 결정은? 

  한 학생이 시험 중 갑자기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마침 담당 교수님이 고사장을 돌아보던 중이었다. 감독은 학생에게 원칙대로 30분 전에는 퇴실이 불가하고, 그 전에 퇴실하면 시험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 후 교수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교수는 학생이 있는 교실에 가 보지도 않고 그저 ‘원칙대로 진행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학생의 상태가 점점 심해져 다시 상황을 설명해도 같은 말의 반복일 뿐. 

  결국 감독은 시험지 제출, 휴대폰 수거, 화장실 동행이라는 조건을 달고 학생을 화장실에 가게 해주었는데, 이후 학생은 제출 전 쓴 답만이라도 채점해주길 요청했다. 감독으로서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한 상황. 결국 학생이 교수님과의 상담을 요청해 두 사람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진땀을 뺐을 동료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9:40am ~ 시험 종료

시험 10분 전에는 시험 종료 공지를 한다. 깜짝 놀라 손을 더 바삐 움직이는 학생도 있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얼굴로 자리를 정돈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바쁜 시간이지만 감독에게는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짬을 이용해 아픈 발과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숨을 고른다. 이제 끝이 보인다.

 


시험 종료 후

학번 별로 나눠 걷은 시험지를 각자 1부씩 가지고서 학번 순으로 정리한다. 맨 앞의 수를 보고 2-3개 그룹으로 나눈 뒤 분류하면 편하다. 이렇게 하면 공지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제출한 학생의 답안도 미리 찾아낼 수 있다. 각자 분류가 끝나면 순서대로 합쳐 출석부와 대조한다. 문제가 없다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 사무실로 돌아가 출석부와 신분증 미지참자 명단을 확인받고, 시험지를 봉해 수거함에 넣으면 정말 끝이다!


 

학부 때 보던 시험 감독은 무척 어른스럽고 먼 사람 같았다. 그 자리에 내가 서리라는 것도, 학생만큼 긴장하리라는 것도 그땐 알지 못했다. 마치 내가 감독 당한 듯한 피로감을 느끼리라는 것도. 잉크와 시선의 무게만큼 묵직해진 서류 봉투를 들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아직 다음 시험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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