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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안녕하세요. 대학원생이에요. 반갑습니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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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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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wearing black coat walking inside brown painted wall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대학원생이에요. 반갑습니다.  



intro.

안녕하세요. 저예요. 잘 지냈나요? 저요, 저는 3일째 매일같이 들락거리던 카페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요 며칠 잠에 들지 못한 건 투 샷짜리 아메리카노 탓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발을 꼼지락거려봅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학원의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하고부터요. 개강 하셨나요? 잘 주무시는지요.

 


잠을 자지 못하는 건 불안합니다. 내 몸이 피로하지 않은 걸까요? 하지만 제 다이어리에는 가지런히, 빼곡하게 일정이 채워져 있는걸요. 저기 갈피를 끼워놓았으니 한 번 펼쳐보세요. , 당신처럼 저도 참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지금 내 몸이 지쳐있지 않다면, 매일 마신 커피가 드디어 몸에서 뭔가 유전자 변형을 일으켰던지 해서 초인이 된 것이 틀림없어요.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해결하는 사람이니까, 제 불면증에도 의문점을 제기해볼까요? 어쩌면 획기적인 논문의 주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교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매사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좋은 논문거리가 나온다고요. 그러니까 한 번 질문해봅시다. 언제나 그렇듯이 구글 검색창에서부터 시작해요. 세상에. 잠 못 드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고, 잠 못 드는 이유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몰랐습니다. 이건 어쩌면 좋은 연구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처럼 큰 문제가 없는데도 잠을 못자고, 그런데도 머리는 맑은 사례가 있는지 찾아봅시다. 만약에 이미 연구가 끝난 문제라면 더 알아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 있나요? 많다고요? 역시 솔깃한 주제는 저만 떠올리는 게 아니군요. 그래서, 결과는 어땠습니까? 나는 왜 잠들지 못하나요? . 그래요, 잠은 몸의 긴장이 풀어져야 찾아오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군요. 정말인지 확인해볼까요. 미간, , 어깨를 꾹꾹 눌러보겠습니다. 아직도 뻣뻣이 굳어있는 근육들이 만져집니다. 내 것인데도 여태 어떤 상태였는지도 몰랐네요. 등잔 밑이 이렇게 어두워서야.

 

하지만 이상합니다. 저는 지금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가장 편한 곳에 있습니다. , 침대, 뜨끈한 전기장판, 수면잠옷, 포근한 구스다운 이불까지. 제가 부릴 수 있는 모든 사치가 깃든 포근하고 따뜻한 장소에 누워있습니다. 알 수 없네요.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더 파고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그게 저희의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저는 꽤 간절히 그 긴장의 원인을 찾고 싶습니다. 학자로서 성장하고 싶은 만큼 간절히 잠들고 싶기도 하거든요.

 


최근 가장 신경 쓰였던 일들이요? 역시 등록금입니다.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등록금을 내야했습니다. T/A 장학금으로 반액이 빠졌어도 등록금은 여전히 비쌌어요. 제 손에 쥔 꼬깃꼬깃한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더군요. 최저시급이 올라도 제가 쥐는 돈은 여전히 이렇고, 등록금은 여전히 저렇습니다. 하지만 분납신청을 해서 간신히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거금을 빼앗기고 있는 저축 통장은 알을 낳기만 하는 거위처럼 점점 야위고 있지만요.


통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졸업 후에 내 수중에 과연 얼마의 돈이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저는 예전부터 계산을 참 못했습니다. 그래서 쭉 인문학 공부에만 매달렸는지도 몰라요. 그런 저도 이럴 때는 서투른 셈을 해본답니다. 미래의 통장에 관한 셈이 끝나면, 이번에는 졸업 후에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던가 하는 두 번째 셈을 시작합니다. 제가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고, 제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그냥 턱 하니 가져다 놓는 것이에요. 앞의 숫자 놀이와 달리 이번에는 예상보다 수가 커서, 자꾸 내가 뺄셈을 제대로 했는지, 지금이 정말 2019년인지 확인해보게 됩니다. 다 쓴 논문의 오탈자를 찾듯이, 참고문헌 작성 양식을 점검하듯이 꼼꼼히요.


그래도 결과를 믿을 수 없어 기계의 힘을 빌립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계산기를 두드려봅니다. 의심했던 것이 확실해집니다. 암산이 맞았네요. 완벽했으면 하는 논문에는 항상 오류가 있는데, 틀렸으면 하는 수식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이게 소설이라면 역설법이라던가 풍자적이라던가 하는 말을 운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그냥 제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의 부스러기입니다.

 


졸리신가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당신을 붙잡고 말을 해야 할 만큼, 누군가와 이 답답하다 못해 먹먹한 숫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안 그러면 평소에는 바빠서 쳐다보지도 못 했던 메신저에 들어가 프로필 사진을 핥듯이 둘러보는 허망한 짓을 할지도 몰라요. 사실은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답이 돌아올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전화를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건 불행하건, 자신이 공감하기 힘든 행복이나 불행까지 둘러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굳이, 가여운 당신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막막함이, 식도부터 명치를 꾹 눌린듯한 먹먹함으로 바뀝니다. 저는 애매한 수식들을 간결한 명사로 정리하는, 발제문을 만들던 버릇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감정에도 이름을 매깁니다. ‘외로움은 어떨까요? 어때요, 적절하고 간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외로움의 절정에 올라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대학원생은 그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 애매한 공집합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자식, 학생, 5년차 프리랜서 강사이 중에 저는 저를 무어라 소개해야 할까요? 간단하게 정의해야 하는 것이 세상과 논문의 진리임을 알면서, 저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20대 중반을 넘긴 저는 학생과 취준생과 직장인에게 둘러 싸여 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한 마디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시 헷갈리나요? 그럼 A라는 가정 대상을 놓고 논의를 진행해봅시다. A는 학교에 갑니다. 시간강사로 수입을 얻고 세금을 냅니다. 미래를 위해 계속 공부하고 스펙을 쌓습니다. 이러한 A는 학생입니까, 사회인입니까, 취준생입니까? 간결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 어렵지요. A는 대학원생입니다. 저이고 당신입니다. 대학원생은, 학생일까요, 사회인일까요, 취준생일까요? 아니면 그 모두인걸까요? 그래서 그들 모두의 고민을 조금씩 떠안고 지내는 걸까요?


당신과 나는 전공을 점점 깊이 파고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파고들어가는 만큼의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생활이 어디에 속해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내가 파기 시작한 땅. 즉 내가 발 디디고 있던 곳이 어디였는지 점점 모호해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인데, 과연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 것인지. 애초에 해결을 하려고 덤빌만한 골칫거리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되어요. 아무래도, 오늘도 잠을 자기에는 그른 것 같습니다.



Outro

결국, 오늘도 아 몰라하고 긴 베개를 껴안습니다.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 이마를 파묻으니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도 이제 주무셔야지요. 늦은 시간까지 고맙습니다. 내일도 연구실에서 만납시다. 아니면 매일 가는 학교 앞 그 카페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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