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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로만 불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여자 - 「비커밍 (Becomin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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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pedia, unsplash.com    



김경옥의 책을 읽는 기쁨 14. 


비커밍 (Becoming 미셸 오바바, 웅진지식하우스

‘퍼스트 레이디’로만 불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여자 



미국 대통령이었던 남자의 부인이라고 소개한다면 아마 굉장히 서운해 할 만한 여자. 미셸 오바바의 얼굴 사진이 겉 표지인 책을 두고, “이 분이 살아온 이야기가 재미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재밌는 이야기인 거야?”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둘 다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녀가 살아온 여정도 궁금했고, 그 궁금함을 푸는 과정,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마치 소설처럼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가 궁금할 만한,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나보다 어린, 나보다 나중에 태어나서 한참을 더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 어떤 후배들이, 과연, 저 분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산 것일까? 하고 궁금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미셸 오바바의 비커밍 (Becoming) 을 읽으면서 몇 번을 다시 앞 표지를 들춰보곤 했다. 앞 표지에 크게 실린 그의 얼굴을 보면서 새겼다. 아 이 분이구나. 이 분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구나.

 

소설도 재미있지만, 우리는 늘 실화에 더 감동하는 것 같다. “그거 실화냐?” 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마치 드라마 같아 보이는 일이, 그것이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실재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요동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흥미진진한 삶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실이었다니,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책을 읽으면서 아주 자주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던 것은 아마 그런 마음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며, 어느 정도는, 감히, 아주 감히 이지만, 조금은 그녀와 나를 동일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이것은 그녀도 원했던 일일 것이다. 그녀는 영국을 방문했을 때, 가난한 동네의 여학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p.422 이 학생들은 과거의 나였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될 수 있는 모습이었다. … 내가 비록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라는 희한한 이름을 달고 먼 나라에서 이곳까지 왔지만, 사실은 너희의 생각보다 우리는 훨씬 비슷한 사람이라고. 나도 노동자 동네에서 컸고, …

 

그녀는 그들에게 포부를 크게 품으면 어떤 일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많은 후배들에게 기꺼이 역할 모델이 되었다.

 

p.577 우리가 그곳에 속할 수 있다면, 다른 많은 사람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 내 눈 앞에 문이 하나 열릴 때마다 나도 남들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애썼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고, 우리 생각의 범위는 우리의 한계를 설정하며, 그것이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의 종착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높고 넓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환경은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때로는 극복되고, 때로는 심지어 더 나은 곳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더 낫게 바꾼 그 환경은, 바로 나의 후배들이 사는 터전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후배들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내가 살아가는 나의 환경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

 

사실 미셸 오바바의 비커밍을 읽기 전에는, 나는 그녀 보다는 그녀의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흑인이고,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없었고, 살면서 아빠란 존재를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 외조부모와 함께 자라면서 유일한 부모인 엄마와도 같이 살지 못하고, 멀리 타국에서 떨어져 살았던 남자. 그리고 그렇게 자라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남자. 나는 그 남자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그저 그의 부인일 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책을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얼마 동안 늘 가방에 넣어 지니고 다니면서, 매일 매일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삶을 접하고,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제야 알겠다. 그녀는 그저 버락 오바마의 부인으로만 불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성공한 직업인으로서 살아온 이 여정에 대해서 그저, 그녀를 누군가의 부인으로만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그녀에게 미안한 일인지. 그녀는 남편의 이름으로만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녀 그 자체로 충분하고,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였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므로, 나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 자체만으로 충분함을 믿고, 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나의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야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비가 너무 일찍 죽어서, 태어남 이후 한번도 아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내 아이들에게, 아빠 대신 홀로된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와도 떨어져 지내면서, 기억조차 못하는 아빠를 상상 속에서 자꾸 불러내는 아직은 아주 어린 내 아이들에게, 그들이 자라서 나중에 학교에 가면, 나는 이야기 해줘야겠다. 저 멀리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너희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없었고, 너희들처럼 엄마와도 떨어져서 외조부모와 함께 자랐던 한 아이가 자라서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의 아빠와는 다르게,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임무 속에서도 끝까지 자녀들의 옆에서, 그들의 작은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 주는 자상한 아빠가 되었다고 이야기 해줘야겠다.    

 

p.550 나는 쇠락하기 시작한 동네에 있는 너무 작은 집에서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함께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서 자랐다. 동시에 나는 교육으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나라에서, 그 중에서도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에서 사랑과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고, 혹은 모든 게 다 있었다. 결국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느냐에 달린 문제다. … 나는 이 나라가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 될 수 있는 나라라서, 그래서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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