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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on Ideas] ‘플랫폼 없음’이 때로는 정당하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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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레인뉴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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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회
작성일
19-03-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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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mond_21/ unsplash.com  



[Aeon Ideas] 

‘플랫폼 없음’이 때로는 정당하다

Why no-platforming is sometimes a justifiable position 
 



 

written by. Neil Levy


옥스포드 우에히로 실용윤리학 센터의 선임 연구원이자 시드니 맥쿼리 대학의 철학 교수이며 

의식과 도덕적 책임(2014년)의 저자이다.





플랫폼의 부재에 대한 논의는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들과 이를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논쟁거리로 등장한다. 전자는 부적절한 발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더 많은 발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후자는 언론의 자유가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방식으로 이 논쟁을 프레이밍하는 것은 절반의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들은 증거를 강조하지만, 플랫폼의 존재 자체가 증거를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플랫폼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념이 위험하거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이유로 정책이나 시위를 통해 대중 토론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들은 소위 말하는 일차적 증거 즉, 발화자의 주장에 대한 증거와 반대 증거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차증거를 간과하고 있다.


고차증거란 그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증거다. 우리는 종종 고차증거에 비추어 스스로가 가진 믿음에 대한 자신감을 제어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당장 라스베가스로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술에 매우 취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를 유보할 수도 있다. 여기서 당신이 술에 취해 있다는 사실은 고차증거이며, 당신이 일차적 증거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아침이 되면 라스베가스에 가자는 생각은 그다지 설득력 없는 생각으로 보일 것이다.


의견불일치의 인식론적 중요성이라는 타이틀로, 현대 인식론에서 고차증거는 수많은 논의의 주제가 되어 왔다. 친숙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과 친구는 밥값을 똑같이 나누어 내기로 결정했다. 계산서를 기다리자니 영원인 듯 느껴져, 당신과 친구는 메뉴에 적힌 가격을 참고해 두 사람이 먹은 메뉴의 가격을 더한 값을 2로 나누기로 했다. 당신은 1인당 각 x원을 부담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친구의 계산은 당신과 조금 다르다. 당신은 자신의 암산 능력이 친구와 거의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경우 관련된 일차적 증거는 모두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의견불일치를 발견했다면 판단에 대한 신뢰도를 낮춰야 한다. 친구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신은 계산을 점검해야 한다. 적어도 한 명은 계산 실수를 했으며, 그 주인공이 당신이 아닌 친구라고 생각할만한 이유가 없으니 스스로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낮춰야 한다.


대학교에서의 연설이나 권위 있는 행사 참석을 위한 요청, 혹은 신문에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은 고차증거를 제공한다. 즉, 존중할만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할만한 발화자라는 증거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전문성을 증명하며, 전문성이란 그 사람의 견해에 특정한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고차증거다. 위의 계산서와 암산과 같은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번에는 관련된 계산이 더 복잡한데다 당신과 맞설 상대는 수학을 전공한 박사 학위자다. 아마 당신은 상대가 실수를 하느니 자신이 계산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으며, 상대방의 판단을 따라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식론자들은 때로 사람들이 의견불일치를 발견할 때 빠르게 스스로의 믿음을 고수한다는 것을 지적해왔다. 상대방과 자신의 의견이 다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그가 이 문제에 답할 능력이 없거나, 농담을 하고 있거나, 또는 ‘나를’ 속이고 있을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신뢰할만한 장소에서 연설을 할 수 있는 초청장은 그 사람이 유능하고 진실하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그것은 중요한 고차증거로 기능한다.


발화를 위한 초청이란, 수많은 잠재적 발화자들 중에서 우리가 듣고자 하는 이로 누군가를 선정하는 일이므로 초청된 이에게 신뢰를 부여한다. 그 신뢰는 선택이라는 사실과 발회를 위해 선택된 장소의 권위 모두에서 기인한다. 자기선택은 이와 같은 신뢰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공원 구석에서 가두연설을 한다면, 나에게 부여되는 부가적인 신뢰는 없다. TED 강연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신용을 부여하듯, 초청에 의해 부여되는 고차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발화 장소의 권위와 선정을 위한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달려있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신경치료가 암을 유발한다는 신빙성 없는 견해를 퍼뜨리는 다큐멘터리 Root Cause(2019년)에 대한 논란을 생각해보자. 이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에서 볼 수 있다. 워싱턴 주립대학의 미디어 학자 에리카 오스틴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사용자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브와 달리 이러한 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이 다큐멘터리에 신용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있다.’는 것은 혼자서 가두연설을 하는 것과 같다. 자기선택만으로 나에게 특별한 신용은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나 넷플릭스나 아마존의 콘텐츠로 선정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신뢰를 부여한다. 물론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그다지 까다로운 선별을 거치치 않고, 부여되는 신뢰는 아주 미미하다. 대학에서의 연설을 위해 초청받는 것은 훨씬 큰 신뢰를 부여한다.


고차증거는 진짜 증거다. 나보다 훨씬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대한 자신감을 제어하고 때로는 완전히 져버리더라도, 고차증거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플랫폼의 부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견해에 유리한 경험적 고려를 인용할 수 있다. 누군가 부당하거나 잘못된 주장을 하도록 초청하는 일은 잘못된 증거를 만들어내며, 우리는 허위 증거를 만드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거짓 주장에 대해 옹호 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플랫폼을 제공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는 일 자체가 그들의 주장에 유리한 고차증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고차증거를 반박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 대학교에서 기후변화 회의론자에게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그의 견해에 유리한 고차증거를 제공한다. 이후 대학이 '의견 균형을 위해' 다른 연사를 초대한다거나, 혹은 그의 발언이 청중들로부터 신랄한 반응을 얻더라도 그러한 고차증거는 반박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 할 수는 있지만 대학 연설 초청이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 할 수는 없다.


물론 그 초청은 명백히 고차증거일 뿐이다. 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혹은 학장의 사촌이기 때문에 연사로 초청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증거는 크게 힘을 잃는다. 고차증거를 반박하는 것은 논리적 주장이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문제들이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비판하는 접근방식을 통해 고차증거들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차적 증거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화자의 인격에 대한 혐의나 플랫폼 제공자의 신뢰성에 대한 공격은 발화된 주장을 다루지는 않지만, 때로 고차증거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된다.



언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지식은 논쟁과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고 좋은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의 표현을 허용한다. 발언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그러나 플랫폼의 공급이 어떤 의견에 유리한 고차증거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논쟁에 참여한 양측이 고려할 인식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재적 발화자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우리는 플랫폼의 부재를 찬성할 인식론적 이유가 있다. 그에게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즉, 반박하기 매우 어려우며 논쟁을 통해 반박되지도 않는 유리한 증거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러한 고려사항은, 적어도 때로는 발화자에게 플랫폼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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