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Aeon Ideas] 오, 나의 끔찍한 피조물이여 : 프랑켄슈타인, 과학이 아닌 예술에 대한 이야기 칼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올브레인뉴스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25회

본문

abstract painting 



[Aeon Ideas]

오, 나의 끔찍한 피조물이여 : 프랑켄슈타인, 과학이 아닌 예술에 대한 이야기 

My odious handiwork: Frankenstein is about art, not science 




 

written by  Ed Simon 

문학 사이트 The Millions의 스탭 작가. 

초기 근대 종교와 문학 전공자로, 문학, 신학 및 문화를 다루는 여러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America and Other Fictions의 저자이며 현재 보스턴에 거주 중이다.  

  



가장 위대한 영국의 낭만주의 소설은, 여름이 없었던 그 해 일 년 동안에 쓰였다인도네시아에 위치한 탐보라산이 18154월에 폭발했고, 일 년 후 북반구는 매사추세츠 주의 어느 여성이 남긴 거꾸로 가는 날씨라는 기록을 통해 완벽하게 요약되는 기후 이변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6월에 내리는 눈과 서리, 그리고 끈질기게 내리는 비로 인해 습하고 불쾌했던 그 여름. 아직 고드윈이었던 18살의 메리 쉘리는 미래 남편이 될 시인 퍼시 쉘리와 눈이 맞아 함께 스위스로 도망쳤다. 그들은 제네바호가 보이는, 시인 바이런과 작가 존 폴리도리도 빌렸던 디오다티 별장의 근처에 머물기로 했으며 그 다음 해에 결혼을 함으로써 부부가 되었고 쉘리는 2년 뒤,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500부가 인쇄된 그녀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그녀와 친구들은 '지상 최후의 날씨'라는 시인 사무엘 테일러의 선언에 영감을 얻어 유령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민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 또한 처음에는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쉘리의 묘사에 따르자면 그녀가 열렬하면서도 과묵한 청자로 참여했던 쌀쌀한 여름밤의 대화에서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마도 과시적인 허풍을 동반했을 사람들은 삶의 법칙에서의 본질과 그것의 발견과 소통에 대한 가능성의 여부을 포함하여 다양한 철학적 교리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의 안건 목록에는 에라스무스 다윈의 실험들, 루이지 갈바니에 의한 소생실험, 나아가 더 오래되고 오컬트적인 형태의 지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녀의 시간동안 쉘리는 조이스 케롤 오츠가 침상에서의 최면 환각이라고 묘사했던 것을 경험하면서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마치 작품 초고를 써내려가던 사무엘 테일러처럼 꿈과 각성 사이의 어스름 속에 잠겼던 쉘리는, 별안간 예상치 못한 상상이 나를 홀리고 인도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방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한계에 달한 남자의 섬뜩한 환영을 보았고 그것으로부터 강한 동력에 힘입은 생명력의 신호들과 불안하고 절반 쯤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느꼈다.

  

쉘리는 그 환영에서 목격한 것들을 한데 엮어 프랑켄슈타인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제약 없는 과학과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풍자로 자주 해석되어 왔다. 마가렛 애트우드가 말한 것처럼 오래 전에는 연극이나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소위 과학이나 비과학이라는 것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대신 수정 거울이 있었고, 원심분리기의 자리에는 연금술사들의 유리병들이 있었으며 로봇을 대신해 난쟁이들이 있었다. 이 연금술사들과 파우스트 풍의 마법사들이 미치광이 과학자의 선조로서 혈통을 일부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쉘리가 소개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프랑켄슈타인에게서 마법과, 악마 그리고 주문 따위를 벗겨내고 기적이나 마법 대신 생물학적 내러티브를 부여함으로써 미치광이 과학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1974, 학자 제임스 리거는 이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 소설은 과학 소설이라기보다는 매력적인 마법과 자극적인 연금술, 아그리파와 파라켈수스의 전화(電化)를 보여줄 뿐이라고 평했다. 갈바니가 보여준 경련하는 개구리 다리에 대중이 매료되었을 당시에도, 초기 근대 과학은 대개의 경우 유별나고 기이한 천재보다는 왕립학회에 의해 정의되는 냉담한 분야였다. 이 책이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로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핵심이 과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오랜 시간동안 과학에 대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켄슈타인은 이야기가 실은 다른 무엇에 관한 이야기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중세 연금술사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의 전 작품과, 이후에는 오컬트 작가인 파라켈수스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작품을 구하기를 소망했으며 스스로 이런 작가들의 엉뚱한 상상을 읽고 연구했다고 말한다. 마법이 퇴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빅터에게 아주 소수에게만 드러난 보물들을 보여주었고 그의 동료 학생들은 그런 가치들에 대해 도통 무지했다,

  

이미 파기된 체계와 쓸모없는 이름들로 자네 기억력만 힘들게 한거야.”

쉘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향한 교수의 대사를 통하여 이런 고전적인 체제의 해체를 암시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쉘리의 아버지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악명 높은 윌리엄 고드윈은 ‘his Lives of the Necromancers(1834)’에서 신비주의자들이 불가사의한 문자들이나 계산을 분석하는 것이 가끔은 유익한 가르침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연금술은 가장 정제되지 않은, 상상력의 과도한 사치이며 인간 능력의 가장 비참한 변형, 법학의 가장 끔찍한 왜곡이라고 묘사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나중에 불분명하게나마 과학적 방법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실험에는 신성한 기운이 배어 있다. 그는 자신이 현대 자연 철학을 사용하는 것을 경멸한다.’고 외쳤고 '과학의 거장들이 불멸과 권력을 추구할 때면 너무나 달라진다.‘고 느꼈다. 프랑켄슈타인이 판도가 바뀌었다며 한탄하는 그 시절에 그러한 욕망이 들끓었다. 쉘리는 단순히 과학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실증주의적 도그마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저술가 필리프 볼이 Unnatural (2012)에서 지적했듯, 프랑켄슈타인이 전적으로 세속적인 것은 그 표면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볼은 이 소설의 통찰력이 과학적 전통보다는 신학에서 기인하며 프랑켄슈타인은 생식 자체의 양면성을 표현한다.’고 썼다. 그런가하면 쉘리는 창조주의 놀라운 매커니즘을 조롱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끔찍하다고말하거나 후에 주인공을 동료 예술가로, 괴물을 그의 혐오스러운 작품으로 묘사하는 등 해석적 진실을 착각하게 만들면서 괴물의 발상에 대하여 고찰한다. 프랑켄슈타인은 프랑켄슈타인 쓰기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괴물은 소설 그 자체이다.

  

철학가 조지 슈타이너는 이야기의 시작이란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쉘리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최초의 구상을 떠올린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비평가 피터 콘래드는 마리 쉘리가 목격한 것처럼, 예술가의 뇌라는 것은 우주 질서에 의해 진정되기 전까지 온갖 요소들이 서로 엉긴, 쇠하지 않는 수렁과 닮아있다고 설명한다. 어둡고 모호한 물질들이 거품과 함께 끓으며 마침내 그녀의 피조물들이 만들어지는 곳.

  

쉘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시체 같은 팔과 다리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녀에게 신체적 부속물들이란 텍스트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소설이 피조물의 각 부분을 어떻게 가공하고, 조합하고, 활력과 온기로 채우느냐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창작 과정을 적절히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이 묘사하기를 이 발견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경험했던 놀라움은 너무나 대단하고 압도적이어서 점진적으로 밟아왔던 모든 단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쉘리는 지금 소설쓰기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셀리의 미학적 이론은 파우스트 신화에서 변형된 것으로, 여기서 영감은 악마로부터 나온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태어났다기보다는 창조에 대한 이해가 변화함에 따라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내부로부터 태동하는 영감은 여전히 신비로운 영역에 속한다. 천재에 대해 알려진 이러한 기대에 반하여, 쉘리는 주술에 대한 경고들을 고대 신화로부터 차용한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신성함에 매혹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국 무신론적 전설이다. 이제 피조물의 위험성은 개인이 가진 놀라운 힘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의 이념에 천착하는 계몽주의시대의 이성적인 사람들과, 낭만주의 시대의 영웅들에 관한 경고이다, 콘래드는 이것이 반란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천재들, 머릿속에 머무는 유령의 고삐를 풀어 부추기는 예술가들에 대한 현대적 신화라고 설명한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만들어 낸 닥터 모로부터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까지,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열광적인 웃음소리는 늘 불꽃을 일으키는 전극처럼 요란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본질은 과학의 위험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창조에 관한 것이다. 우레 같은 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저주받은 창조주를 향해 외치는 괴물의 고독한 비명만이 대신 자리하는, 현 시대의 새로운 성서는 이제 한 때 차가웠던 북극 툰드라를 건너 겨울이 없는 시간을 가로지른다.





 

6fb671461e79357f75ea0f2330c5b8c4_1541736611_4099.JPG

올브레인에서는 해외 주요 대학 출판사 및 연구기관과 함께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발행하는 디지털 문화 매거진 AEON의 글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원문과 더 많은 글은 위 로고에 연결된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Aeon counter – do not remove 


Aeon counter – do not remove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